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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주부전 청하지도 않았건만 머리 뉘일 돌 생겼다 자라처럼 일하다가 간담이 서늘하면 목 빼고 눈을 감출 개운죽이나 키워야지 (2024.01.07) 갑자기 보직이 바뀌어 피곤한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주로 움직이는 일을 많이 했는데 새로 받은 업무는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좀이 쑤시고 눈과 목, 어깨가 많이 아팠는데 일 주 정도 되니 그나마 적응해 가는 것 같습니다. 중국 서진 사람이었던 빙익태수 손초 역시 이런 사무직의 애환을 느꼈던 것인지 수석침류(漱石枕流)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는 사실 수류침석(漱流枕石)을 잘못 말한 것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냇물로 양치질을 하고 돌을 베개 삼겠다 하는 것을 그만 반대로 이야기한 것입니다. 듣고 있던 친구 왕제가 이를 지적하며.. 2024. 1. 20.
청설(聽雪) & 배설(排雪) 눈으로 담으래서 눈인줄만 알았다 바람에 귀를 닫고 눈 빼고 종종 걷다 풀 낙엽 끓이는 소리에 노래도 벗어던졌다 (2023.12.30) 올해는 유독 눈이 자주 옵니다. 출근길 버스에서 내려 언덕을 오르며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데 못 듣던 노이즈가 들려 걸음도 음악도 멈추어 보니 자글자글 눈 내리는 소리였습니다. 평일과는 다르게 주말 근무는 주로 자리를 지키는 일이라 짬을 내서 시조를 쓰다 길이 얼어 차들이 못 올라오고 있다는 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쓸 때는 나름 흡족한 시조였는데 다시 보니 왜 이리도 민망하고 보기 싫은지, 지울까 망설이다 한 수 더 부칩니다. 눈이 싫어야 어른이라는데 그래도 저는 아직 눈이 좋으니 철이 덜 든 모양입니다. 눈 쓰는 손 따로있고 시 쓰는 손 따로있나 다 같이 발.. 2024. 1. 19.
P 졸음 쉼터 500m 앞 ↗ 상투 마냥 머리 쥐고 제가 아주 상전이다 쥐처럼 쫓아내도 황소 같은 뒷걸음질 그대로 밟아버려도 좋으련만 관세음보살 (2023.12.29) 2024. 1. 18.
팥죽을 들며 동지는 고뿔이 쉽고 하지는 달 아쉬운데 해 뜨면 볕을 쬐고 달 뜨면 달 쬐라던 님 따라 정월에는 호두 부럼 깨물어볼까 (23.12.21 계묘년 동지 전야) 동지가 아직 한 달이 안 지났는데 벌써 해가 많이 길어졌습니다. 일하는 시간은 분명 똑같은데 이상하게 겨울은 퇴근하면 어두워서 그런지 하루가 다 간 것 같아 괜스레 억울한 기분이 드는 것이 흠입니다. 어릴 때는 눈이 오는 겨울이나 생일이 있는 가을을 막연히 좋아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선호하는 계절도 눈처럼 녹아 해 뜨는 쪽으로 슬그머니 흘러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여름이 거의 끝날 무렵 아침저녁으로 조금 선선하다 느끼는 정도가 딱 좋습니다. 쓰다 보니 또 짧은 머리에 가벼운 옷차림, 팔에 스치는 기분 좋은 바람의 촉감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막상 여름.. 2024. 1. 17.
점심 산책 도서관 뒷산에는 까치도 책을 본다 푸르륵 날개깃으로 앞마구리 넘겨가며 주워다 삼킬 낟알 있을까 낙엽책을 뒤적인다 (23.12.19) 2024. 1. 16.
상사(병) 보시니 좋았을까 은둔처 레코드 숍 벗의 글 노래 삼고 나팔 빚고 북을 기워 상향등 불 앞에서도 들렸을까 상사병 (23.12.18) 고3 수험생 시절, 입시에 집중하라며 모든 전자기기를 압수했더니 창고에서 아버지가 젊을 때 듣던 CD와 카세트테이프까지 몽땅 다 꺼내 듣던 광기에 어머니마저 두 손 두 발 다 들게 했을 만큼 음악에 목말랐던 때가 있습니다. 시작은 성당에서 성서 쓰기 대회 1등 상으로 받은 512 메가바이트의 하얀색 아이리버 mp3 플레이어가 아닐까 합니다. 친구들의 것에 비해서 적게는 2배 많게는 4배나 많은 용량에 펜던트 같은 디자인, 거울 위로 초록색 글자가 떠다니는 화면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물건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외적인 요소들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재생하는 순간 세.. 2024.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