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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별주부전

by 사등 2024. 1. 20.

 

<별주부전>

청하지도 않았건만 머리 뉘일 돌 생겼다
자라처럼 일하다가 간담이 서늘하면
목 빼고 눈을 감출 개운죽이나 키워야지

(2024.01.07)

갑자기 보직이 바뀌어 피곤한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주로 움직이는 일을 많이 했는데 새로 받은 업무는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좀이 쑤시고 눈과 목, 어깨가 많이 아팠는데 일 주 정도 되니 그나마 적응해 가는 것 같습니다. 중국 서진 사람이었던 빙익태수 손초 역시 이런 사무직의 애환을 느꼈던 것인지 수석침류(漱石枕流)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는 사실 수류침석()을 잘못 말한 것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냇물로 양치질을 하고 돌을 베개 삼겠다 하는 것을 그만 반대로 이야기한 것입니다. 듣고 있던 친구 왕제가 이를 지적하며 비웃자 손초는 이렇게 둘러댑니다.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다는 것은 쓸데없는 말을 들었을 때 귀를 씻기 위해서이고, 돌로 양치질한다는 것은 이를 단련하기 위함이라네." 참으로 고집스럽고 우습게 들리는 말, 그야말로 궤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러한 임기응변을 대단한 재주로 여기는 사람이 많았나 봅니다. 과연 또는 역시를  뜻하는 일본어 사스가(さすが)를 종종 流石이라고 쓰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나쓰메 소세키(漱石)도 이 설화가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필명(본명은 긴노스케)을 여기서 따왔습니다. 어쩌면 저에게도 점심시간이면 잠시 눈을 붙일 돌(목받침이 달린 의자)이 생겼으니 반쯤은 수류침석 성공인 듯합니다. 사무실이 건조하고 책상도 허전하니 식물이나 하나 들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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