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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청설(聽雪) & 배설(排雪)

by 사등 2024. 1. 19.

 

<청설(聽雪)>

눈으로 담으래서 눈인줄만 알았다
바람에 귀를 닫고 눈 빼고 종종 걷다
풀 낙엽 끓이는 소리에 노래도 벗어던졌다

(2023.12.30)

 

올해는 유독 눈이 자주 옵니다. 출근길 버스에서 내려 언덕을 오르며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데 못 듣던 노이즈가 들려 걸음도 음악도 멈추어 보니 자글자글 눈 내리는 소리였습니다. 평일과는 다르게 주말 근무는 주로 자리를 지키는 일이라 짬을 내서 시조를 쓰다 길이 얼어 차들이 못 올라오고 있다는 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쓸 때는 나름 흡족한 시조였는데 다시 보니 왜 이리도 민망하고 보기 싫은지, 지울까 망설이다 한 수 더 부칩니다. 눈이 싫어야 어른이라는데 그래도 저는 아직 눈이 좋으니 철이 덜 든 모양입니다. 


<배설(排雪)>

눈 쓰는 손 따로있고 시 쓰는 손 따로있나
다 같이 발 붙이고 견뎌야 할 땅일진대
시조가 부끄러울 일인가 나는 나를 탓해야지

(2023.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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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시조로 하지 않고 굳이 제목을 새로 붙인 것은 시상이 다르기도 하거니와 아직은 단시조에 대한 고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슈만은 그토록 완벽한 단악장의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을 쓰고 나중에 2, 3악장을 더해 피아노 협주곡을 완성했는데 어색하거나 사족같이 느껴지는 부분이 전혀 없어서 들을 때마다 감탄하게 됩니다. 저에게도 그만한 재능이 있었다면 연시조를 쓰겠지만은 지금은 단시조만으로도 버겁습니다. 사실 일전에 올린 <동해 그리고 봄날은 간다>도 처음에는 <별>에 이어 붙인 시조였습니다. 분리하고 싶어도 마땅한 제목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다 블로그에 올린다고 급하게 지어서 사실 지금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도저히 생각나지 않으면 <별 2>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당분간은 이렇게 연작이 되면 연작이 되었지 연시조를 쓰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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