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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4

악은 존재하지 않는가: 하마구치 류스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함께 보기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는 느릿하고 침울한 음악과 함께 하늘로 뻗어있는 숲의 나뭇가지들을 천천히 흘려보내면서 시작합니다. 그것은 자연의 시간입니다. 그다음에는 잠깐 아이의 시간을 보여준 뒤, 시골 마을의 시간으로 이동합니다. 통나무를 자르고 다시 도끼로 하나하나 패서 장작을 만들고, 계곡 물을 말통에 담아 하나하나 직접 옮기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아이들의 시간으로 돌아옵니다. 다루마상가고론다(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의 시간은 마치 멈춰있는 듯하다가 또 빠르게 지나갑니다. 자동차의 시간, 딸을 찾는 아버지의 시간, 집으로 돌아가는 부녀의 시간, 해가 진 촌락의 시간을 지나 이번에는 도시의 시간이 이 마을의 시간을 침범합니다. 두 시간은 점점 뒤엉켜 알 수 없게 됩니다. 시간은 시.. 2024. 4. 20.
자연주의와 사실주의 그리고 정치적 문학: 조리스카를 위스망스의 『저 아래』와 미셸 투르니에의 『지독한 사랑』 함께 읽기 3 계속해서 질 드 레 이야기를 집필하던 뒤르탈은 데 제르미의 소개로 생쉴피스 성당의 종지기 카렉스를 만나 우정을 나눕니다. 세 사람은 저 아래 세상이 내려다 보이는 쉴피스 성당의 종탑에서 가톨릭과, 강신술, 악마주의에 대해 토론합니다. 뒤르탈은 오늘날 악마 숭배가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카렉스와 신앙이 없는 데 제르미는 모두 입을 모아 여전히 그러한 행위들이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증인으로, 현존하는 악이자 환속한 사제인 도크르 참사원과 대결한, 점성술사이자 선한 기독교인 제뱅제를 초대합니다. 한 편 뒤르탈은 모벨 부인이라는 가명을 쓰는 여인의 편지를 받아 그녀와 편지를 주고받게 됩니다. 그녀의 정체는 상트르브 부인 이아생트로 둘은 결국 걷잡을 수 없는 불륜 관계에 빠집.. 2024. 4. 8.
자연주의와 사실주의 그리고 정치적 문학: 조리스카를 위스망스의 『저 아래』와 미셸 투르니에의 『지독한 사랑』 함께 읽기 2 소설가 이외에도 미술 비평가이자 후원자로 활동했던 위스망스는 그의 특기를 살려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예수의 수난 그림을 글로 묘사하며 자신의 문학관을 슬쩍 내보입니다. 그는 그뤼네발트가 "가장 열렬한 이상주의자"였다고 추켜세우며 문학에서는 그에 필적할 만한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몇 작품들을 언급하며 표현들 몇 개가 세부적인 면에서 신의 비천한 모습을 그린 그뤼네발트를 상기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대지의 한계를 벗어남과 동시에 대지에 밀착되어 있는 것은 이 그림이 유일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안락의자에 파묻혀 몸을 떨었고, 거의 고통을 느끼다시피 하며 눈을 감았다. 그림을 떠올리자 눈앞에 아주 환하게 그 그림이 다시 보였다. 카셀 박물관의 작은 방에 들어서면서 내질렀던 탄성을 그는 마음속으로 다시 외쳤다.. 2024. 4. 7.
자연주의와 사실주의 그리고 정치적 문학: 조리스카를 위스망스의 『저 아래』와 미셸 투르니에의 『지독한 사랑』 함께 읽기 시작하기에 앞서 고백하자면 저는 좋은 예술이 꼭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전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선 혹은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정치적 예술을 부정하거나 혐오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정치적 예술이 있다고 믿고 정치적 예술이라면 그러해야 한다는 소신 정도는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최근 국내의 문학 작품들이 단순히 정치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과도하게 부정적인 또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에 대해 다소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블로그에서 이러한 주제에 대해 다루는 두 편의 글, 「문학론, 혹은 정치적 예술의 가능성에 대하여」와 「정치적 예술을 향하여」를 보았습니다. 흥미를 느낀 저는 댓글을 남겼고 우리는 에밀졸라의 자연주의와 오귀스트 .. 2024. 3.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