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조

귀환

by 사등 2024. 4. 14.


<귀환>

여기는 꺼내둔 심장
휴스턴, 착륙하겠다

그 많은 운석을 견뎌
닳고 닳은 달의 모래

덧신도 벗어던지고
그 위에 맨발로 서겠다

(2024.04.14)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언젠가는 마주해야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의 죽음, 동료 비행사들의 사고와 같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닐은 일터로 도망쳤습니다. 동료의 위로도 거절하고 심지어 가장 가까워야 할 아내와도 슬픔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닐은 아내를 버려두고 장례식장에서 홀로 도망치듯 나와 휴대용 망원경으로 달을 관측합니다. 달은 그의 도피처입니다. 그는 상처받지 않도록 가슴속의 달을 꺼내서 밤하늘에 올려다 두고 그저 바라볼 뿐입니다. 영화 "퍼스트맨"은 닐 암스트롱의 전기 영화로 동명의 책을 원작으로 합니다. 저는 둘 다 굉장히 재밌게 봤지만 영화의 경우 사실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을 내딛으며 했던 말(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이 무색하게 영화는 그 한 명의 인간이 내딛는 작은 발걸음에 더 집중합니다. 위대하고 극적인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암스트롱의 개인사는 너무나 내밀하고 또 한편으로는 지루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 없이 본다면 이 영화는 꽤나 훌륭한 극영화(드라마)입니다. 최근 개인적으로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서 잠을 제대로 못 자는 통에, 이럴 거면 영화나 보자는 생각으로, 왓챠를 재구독했습니다. 그리고 뒤척이다 너무 이른 새벽에 깨는 날이면 영화를 한 편씩 보고 있습니다. "퍼스트맨"도 이렇게 다시 본 영화 중 하나입니다. 처음 극장에서 봤을 때도 좋았지만 이 정도로 먹먹하지는 않았는데 이번에는 암스트롱 부인의 입장에서 예전에는 안 보이던 장면이 하나 둘 보이더니 마지막에는 눈물이 났습니다. 아니면 그냥 울고 싶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닐은 결국 달에 갔습니다. 수정체와 망막과 눈꺼풀과 성층권과 지구의 아름답고 푸른 대기 그리고 기나긴 어둠, 무중력과 미증유의 공간을 지나 그 모든 보호막들을 뒤로하고 울퉁불퉁한 달의 민낯을 마주했습니다.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언젠가는 마주해야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 마음은 공연장에 가거나 친구들을 만나고 쇼핑을 하고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것 만으로는 지울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시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훌쩍  (4) 2024.05.04
이모의 카페가 문을 닫는다  (2) 2024.04.28
소급  (0) 2024.04.06
뻔한 걸 알면서도 쓰게 되는 시가 있다  (4) 2024.03.31
타조와 착오  (8) 2024.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