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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타조와 착오

by 사등 2024. 3. 29.


<타조와 착오>

집인 줄 알았는데
생태학습장이란다

들판인 줄 알았던 건
일방통행 도로란다

뉴스는 날 타조란다
사람인 줄 알았는데

(2024.03.29)
 
며칠 전 집 앞에서 타조가 발견되었습니다. 동네도 아니고 근처도 아니고 진짜 말 그대로 집 앞에서. 타조는 생태학습장에서 탈출했다고 합니다. 도로 위의 타조는 영문도 모르고 차들이 달리면 따라서 달렸다고 합니다. 사진과 동영상, 목격담들이 올라옵니다. 생태학습장 사장님의 인터뷰가 올라옵니다. 모두들 타조가 불쌍하다고 합니다,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겠어. 평생을 갇혀 살다 도망친 곳이 겨우 차도라니. 10년을 같은 집에서 매일 같은 도로로 출근하는 김 모 씨가 말합니다. 나는 거울을 보기가 외롭고 두려워집니다.

 59. 우리는 인간의 욕망을 세 부류로 나눈다. (1) 최소한의 노력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욕망 (2) 상당한 노력을 치러야만 충족시킬 수 있는 욕망 (3) 아무리 노력해도 충족시킬 수 없는 욕망, 권력 과정은 그중에 두 번째 부류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과정이다. 세 번째 부류의 욕망이 많으면 많을수록 좌절과 분노, 그리고 궁극적으로 패배주의와 절망도 더 빈번히 생겨나게 된다.
 60. 현대 산업 사회에서 자연적인 인간의 욕망은 주로 첫 번째와 세 번째 부류에 속하며, 두 번째 부류의 욕망은 점점 더 인위적으로 조작된 욕망들이 되어 간다.
 (중략)
 71. 현대 생활에서 사람들이 지닌 부질없는 욕망 중 상당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좌절되게 마련이고, 그 결과 세 번째 부류의 욕망으로 전락한다. 여기에 분노를 느끼는 사람이 생기겠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싸움이 허용되지 않는다. 많은 경우에 심지어는 말을 심하게 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어디론가 급히 가야 할 때도 있고, 아니면 천천히 움직이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통 흐름을 따르고 교통 신호를 지키며 움직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다른 방식으로 작업해 보고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는 고용주가 정한 규칙을 따라야만 한다. 현대인은 그런 식으로 (명시적이건 암묵적이건) 규칙과 규제의 그물에 꽁꽁 묶여 있으며, 그 규칙과 규제들은 현대인의 욕망을 좌절시키고, 그 결과 권력 과정을 교란시킨다. 이 규제들 대부분은 산업 사회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필수적이므로,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도 없다.
 (후략)
(산업사회와 그 미래 中 현대 사회에서의 권력 과정 붕괴, 시어도어 카진스키)

 

유나바머로 더 유명한 테드 카진스키는 인간에게 "권력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보았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동 저자의 "반기술 혁명: 왜? 어떻게?"를 참고하길 바랍니다. 자신이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해명하고 테러행위를 변호하는 데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한 유나바머 선언문보다는 훨씬 정제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권력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을, 주변 환경을, 통제하고 변화시킵니다. 이러한 권력 과정은 오랜 과거에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안락한 현대사회에 실제로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우리는 권력 과정을 잃어버렸습니다. 현대인의 욕구는 대부분 너무나도 쉽게 달성되는 것이거나 절대로 달성할 수 없는 것뿐입니다. 현대인이 겪는 카진스키적 분노의 가장 좋은 예시는 소음 공해가 유발하는 스트레스일 것입니다. 층간 소음, 공사 소음, 비행기 소음 등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그냥 참거나, 공무원을 괴롭히거나 (그런데 불행히도 공무원 역시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최악의 경우 이웃 주민을 공격해 범죄자가 될 뿐입니다. 야생의 타조였다면? 그저 자리를 옮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인간에게는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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