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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모자란 사랑

by 사등 2024. 3. 9.


<모자란 사랑>

날 때부터 셋이란다
"그런 일이 다 있나요?"
"꽤나 흔한 일입니다"
흔쾌한 설명에도 괜스레 혀끝에 걸리는 빈 잇몸이 간지럽다

 

(2024.03.09)
 
하루는 한쪽 잇몸이 자주 붓고 아파서 치과에 갔습니다. 유일하게 사랑니가 나지 않은 쪽이라 이가 나오려고 그러나 했는데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이럴 수가! 저는 원래 사랑니가 세 개뿐인 사람이라고 합니다. 잇몸이 부은 건 이가 나려고 그랬던 것이 아니고 위쪽에만 난 사랑니가 자꾸 아래쪽 잇몸을 씹어서 그랬던 것입니다. 철석같이 사랑니는 네 개라고 믿고 있었는데 세 개 밖에 없다니! 게다가 치료와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그나마 있는 하나도 뽑아야 했습니다. 억울한 마음이 들어 찾아보니 아예 사랑니가 없는 사람을 제외하면 의외로 사랑니가 정상적으로 네 개 다 자라는 사람의 비율은 77% 정도였습니다. 그러니까 네 명 중 한 명은 사랑니가 한 개거나 두 개 혹은 세 개뿐인 겁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나니 이제야 조금 위로가 됩니다. 돌이켜보면 저의 연애는 항상 사랑이 부족해서 실패했습니다. 4의 사랑을 주고받는 게 일반적인 세상에서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3의 사랑을 추구하는 저는 항상 이기적인 사람, 차가운 사람으로 보였을 겁니다. 조금 더 빨리 알았다면 넘치는 사랑을 다 삼키려고 잇몸이 붓도록 꼭꼭 씹지는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사랑은 기술인가? 기술이라면 사랑에는 지식과 노력이 요구된다. 혹은 사랑은 우연한 기회에 경험하게 되는, 다시 말하면 행운만 있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즐거운 감정인가? 이 작은 책은 '사랑은 기술이다'라는 견해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물론 사랑은 즐거운 감정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인이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현대인들은 사랑을 갈망하고, 행복한 사랑의 이야기, 불행한 사랑의 이야기를 펼쳐놓는 무수한 영화를 보며, 사랑을 노래한 시시한 수백 가지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사랑에 대해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특별한 태도는 몇 가지 전제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이 전제는 단독으로 또는 결합되어서 이 태도를 뒷받침해준다. (중략)
 사랑에 대해서 배울 필요가 없다는 태도의 배경이 되는 두 번째 전제는 사랑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는 가정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고, 사랑할 또는 사랑받을 올바른 대상을 발견하기가 어려울 뿐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후략)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생니를 발치하는 건 마취를 해서 그런지 아프지는 않았습니다. 이마를 강하게 눌러서 고정시키는 의사 선생님의 손이 억척스럽고 뭔가 우지끈하는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요. 그런데 왜일까요? 수술대에서 일어나자 등에는 식은땀이 한 바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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