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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흠과 같은 시

by 사등 2024. 2. 26.

 
<흠과 같은 시>

못나도 깎아 두면 두 달 뒤엔 곶감이란다
열중에 일곱 날을 땡감으로 살다가도
팔구십 두 팔로 버텨 맛 내는 흠과 같은 시

(2024.02.26)
 
고욤 일흔이 감 하나만 못하다는 말은 좋지 못한 것이 아무리 많아도 훌륭한 것 하나보다 쓸모가 없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고욤은 감나무과 감나무속의 식물로 주로 감나무와 접붙이는 뿌리나무로 쓰입니다. 사실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과일들은 이렇게 다른 종류의 두 나무를 접목해서 키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욤은 감보다 더 떫은맛이 강하고 열매는 작은데 씨앗이 많아 지금은 거의 먹지 않습니다만, 병충해에 강하고 잘 자란다는 장점이 있어 유전적으로 비슷한 감에게 일종의 대리모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어릴 때 다들 과일을 먹다가 나오는 씨앗을 보고 이걸 심으면 진짜 같은 과일이 열리는지 궁금해했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눈치채셨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접목으로 얻은 형질은 대부분 계승되지 않기 때문에 만약 감 씨앗을 심는다면 원래 접붙인 고욤나무나 땡감나무로 자라게 됩니다. 그러니까 사실 고욤 일흔이 감 하나만 못하다는 말은 열매만 두고 보면 맞는 말일지 모르지만, 씨앗이나 나무로 보자면 섭섭한 소리입니다. 감나무 묘목이 일흔 개가 있어도 고욤나무 한 그루가 없으면 전부 땡감이 되어버리니 말이죠. 두고 보십시오. 지금 우리가 뿌린 씨앗이 쓸모없는 고욤나무 같아도 뿌리를 잘 내리고 버티다 보면 언젠가 멋진 감나무가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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