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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07:50

by 사등 2024. 2. 22.


<07:50>

흰구름 토해내고



굴뚝으로
매연이 들어찬다
공장은 눈이 맵다
줄줄이 트럭에 실려 출하되는 영혼들

(2023.02.22)

 

매일 아침 일곱 시 오십 분 문을 나섭니다. 집 앞 어묵공장에서는 벌써 새하얀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습니다. 7년 전 이사 온 이곳은 공단으로 향하는 대로 초입에 있어 횡단보도 하나 건너 어묵공장과 참치공장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냉동창고를 마주 보고 있습니다. 밤이면 어김없이 공단 안쪽의 빵공장에서 밀가루 냄새가 넘어오고, 버스에서 깜빡 졸았다가는 인적은 하나 없고 커다란 물류 트럭들만 다니는 공장 앞에서 내리게 되는 그런 동네입니다. 이사는 자주 다닌 편이지만 항상 주거단지에만 살았던 저에게 이렇게 적나라한 2차 산업의 풍광은 무척이나 생소하고 위압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고 나니 이 공장이라는 사물은 덩치만 컸지 우리와 다를 바가 하나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추운 겨울에도 하얀 입김을 뿜어내며 일터로 가듯이 공장도 밤낮을 모르고 돌아가며 수증기를 내뱉습니다.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은 프롤레타리아들이 하루 노동의 대가로 그 어떠한 생산물도 집으로 가져갈 수 없듯이 공장 역시 자기가 낳은 자식 같은 상품들을 어느 것 하나 품에 남겨둘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줄줄이 버스에 실려 출근을 하고 공장의 영혼은 줄줄이 트럭에 실려 출하됩니다. 우리는 오늘도 육신의 안위를 위해서 스스로의 영혼을 착취합니다. 공장은 오늘도 가동을 합니다. 우리는 오늘도 출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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