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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연주의와 사실주의 그리고 정치적 문학: 조리스카를 위스망스의 『저 아래』와 미셸 투르니에의 『지독한 사랑』 함께 읽기 2

by 사등 2024. 4. 7.

이젠하임 제단화, 마티아스 그뤼네발트 (이 중 가운데 그림이 예수의 수난)

 

소설가 이외에도 미술 비평가이자 후원자로 활동했던 위스망스는 그의 특기를 살려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예수의 수난 그림을 글로 묘사하며 자신의 문학관을 슬쩍 내보입니다. 그는 그뤼네발트가 "가장 열렬한 이상주의자"였다고 추켜세우며 문학에서는 그에 필적할 만한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몇 작품들을 언급하며 표현들 몇 개가 세부적인 면에서 신의 비천한 모습을 그린 그뤼네발트를 상기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대지의 한계를 벗어남과 동시에 대지에 밀착되어 있는 것은 이 그림이 유일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안락의자에 파묻혀 몸을 떨었고, 거의 고통을 느끼다시피 하며 눈을 감았다. 그림을 떠올리자 눈앞에 아주 환하게 그 그림이 다시 보였다. 카셀 박물관의 작은 방에 들어서면서 내질렀던 탄성을 그는 마음속으로 다시 외쳤다. 그 방 안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거대한 예수그리스도 형상이 있었는데, 마치 체중이 실린 활처럼 휜, 껍질이 제대로 벗겨지지 않은 나뭇가지가 팔을 대신해서 그의 몸통을 관통하고 있었다.
 그 나뭇가지는 다시 펴져서, 지면 쪽 구멍 난 양발에 박힌 커다란 못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그 가련한 육신을 이 모욕과 죄악의 땅으로부터 멀리 던져버리려 하는 것 같았다.
 탈구되어 어깨에서 거의 빠져나온 그리스도의 양팔은 둥글게 말려 올라간 근육 띠에 의해 길쭉하게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친 겨드랑이는 삐거덕거리고 있었다. 크게 벌린 양손의 손가락들은 기괴한 모습으로 덜렁거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기도와 비난이 뒤섞인 태도로 축복을 내리고 있었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가슴근육이 떨리고 있었다. 훤히 드러난 갈비뼈들로 인해 상반신은 원형의 도랑들이 둘러쳐진 것 같았다. 벼룩에 물린 자국들이 있고, 가는 막대에 의해 바늘 자국처럼 찔린 반점이 있는, 검게 썩고 푸르뎅뎅해진 살들은 부어올라 있었다. 부러진 채 살갗 속에 박혀 있는 그 가는 막대들은 아직도 가시로 이곳저곳 살을 찌르고 있었다.
 피고름이 흘러나왔다. 옆구리의 보다 깊은 상처에서는 잘 익은 과일로 만든 진한 즙 같은 피가 철철 넘쳐 엉덩이를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불그죽죽한 장액, 약간의 유액, 회색 모젤 포도주 같은 물이 가슴에서 배어 나와 복부를 적시고 있었고, 그 아래로는 불룩한 주름을 넣은 속옷 조각이 나부끼고 있었다. 억지로 붙여놓은 무릎들은 슬개골이 부딪치고 있어고, 뒤틀린 다리들은 발목까지 움푹 패여 있었다. 서로 포개진 발들은 길게 늘어져서 완전히 썩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피에 흠뻑 젖은 채 창백해져 있었다. 물러지고 피가 엉겨 붙은 그 발들은 끔찍 했다. 살은 아물어서 못대가리 위로 다시 솟아 있었고, 경직된 발가락들은 기원하는 손짓과는 반대로 저주를 내리고 있었고, 파랗게 된 발톱 끝은 튀링겐주의 붉게 물든 땅처럼 철분이 많은 황갈색 땅에 거의 닿아 있었다.
 발진이 돋은 시신 위로는 어수선하고 커다란 머리가 드러나 있었다. 가시가 삐죽삐죽 솟은 왕관을 쓴 채 그 머리는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걸려 있었고, 아직도 고통과 공포의 시선으로 떨고 있는 퀭한 한쪽 눈만 간신히 떠져 있었다. 얼굴은 울퉁불퉁했고, 이마는 움푹 꺼졌으며 양쪽 뺨은 바싹 말라붙어 있었다. 뒤로 젖혀진 이목구비에서 체액이 흘러나오고 있는 반면 끔찍한 강직 경련성 요동 때문에 꽉 다물어진 턱과 더불어 벌어진 입은 웃고 있었다.
 (중략)
 아! 피와 눈물로 범벅이 된 이 그리스도 수난상은 르네상스 시대 이후 교회가 채택해왔던 골고다 언덕의 유순한 그리스도의 모습과는 천양지차였다! 강직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이 그림 속 그리스도는 부자들의 그리스도도, 갈릴리의 아도니스도, 풍채 좋은 미남도, 갈색 머리카락에 수염이 가지런히 나 있고 싱겁게 긴 얼굴을 가진, 400년 전부터 신자들이 숭배해오고 있는 잘생긴 소년도 아니었다. 그 그림 속 그리스도는 유스티누스와 성 바실레이오스, 성 키릴로스, 테르툴리아누스의 그리스도였고, 초기 교회의 그리스도였고, 모든 죄를 떠맡고 겸양에 의해 가장 비천한 모습을 띠고 있기에 상스럽고 추악한 그리스도였다.
 (중략)
 단언컨대 자연주의의 관점에서 그러한 주제들이 다루어진 적은 아직까지 없었다. 어떤 화가도 그런 식으로 신의 시신을 다루지 않았고,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분비액과 피에 그렇게 노골적으로 자신의 붓을 담그지 않았다. 그 그림은 극단적이었고 끔찍했다. 그뤼네발트는 가장 광적인 리얼리스트였다. 하지만 이 매춘부 같은 대속자, 이 시체 같은 신을 들여다보노라면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여기저기 팬 그의 머리에서는 빛이 새어 나왔다. 끓어오르는 육체와 강직성 경련이 일어나고 있는 이목구비를 초인간적인 표정이 밝혀주고 있었다. 사지를 펼치고 있는 그 시체는 하느님의 시체였다. 후광도 배광도 없이 점점이 묻은 피로 붉은 반점이 그러져 있고 헝클어진 왕관을 쓰고 있는 단순하고 우스꽝스러운 복장의 예수는 아연실색한 채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울고 있는 마리아와 말라버린 눈에서 더 이상 눈물이 흘러나오지 않는 성 요한 사이에서 지고의 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몽상에서 깨어난 뒤르탈은 이제 신비주의적 자연주의에 도달하게 되지만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는 "어떤 믿음으로도 자신이 고무된다고 느끼지 못"하고 "신에게서는 아무런 명령이 없"고, "스스로를 포기하고 알 수 없는 불변의 교리 세계 속으로 거리낌 없이 들어가려는 필연적인 의지가 부족"합니다. 뒤르탈은 "끊임없이 종교 주위를 맴돌"지만 그의 영혼은 "종교의 타오르는 줄기를 휘감아 타고 올라갈 수도, 시간적 간격과 세속을 넘어 더 놀랍도록 높은 곳에서 황홀경에 몰입할 수도 없"습니다. 그는 "알 수 없는 것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으면서"도 삼위일체를 믿지 않고,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합니다. 자연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생각을 계속하던 뒤르탈은 데 제르미가 그렇게 야유를 퍼부었던 자연주의라는 출발점에서 멀리 떨어진 가톨릭 신앙까지 나아갔다가 이내 다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의 관심은 다시 '푸른 수염' 질 드 레 원수에게로 향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