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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연주의와 사실주의 그리고 정치적 문학: 조리스카를 위스망스의 『저 아래』와 미셸 투르니에의 『지독한 사랑』 함께 읽기 3

by 사등 2024. 4. 8.

재판소, 장 루이 포랭


 계속해서 질 드 레 이야기를 집필하던 뒤르탈은 데 제르미의 소개로 생쉴피스 성당의 종지기 카렉스를 만나 우정을 나눕니다. 세 사람은 저 아래 세상이 내려다 보이는 쉴피스 성당의 종탑에서 가톨릭과, 강신술, 악마주의에 대해 토론합니다. 뒤르탈은 오늘날 악마 숭배가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카렉스와 신앙이 없는 데 제르미는 모두 입을 모아 여전히 그러한 행위들이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증인으로, 현존하는 악이자 환속한 사제인 도크르 참사원과 대결한, 점성술사이자 선한 기독교인 제뱅제를 초대합니다.

 한 편 뒤르탈은 모벨 부인이라는 가명을 쓰는 여인의 편지를 받아 그녀와 편지를 주고받게 됩니다. 그녀의 정체는 상트르브 부인 이아생트로 둘은 결국 걷잡을 수 없는 불륜 관계에 빠집니다. 뒤르탈은 이아생트와의 잠자리에서, 그리고 소문을 통해 그녀가 몽마의 지배하에 있으며 악마 숭배자 도크르 참사원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차리고 이아생트에게 그와의 만남을 주선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녀는 처음에는 경계하며 거절하지만 뒤르탈의 끈질긴 공세에 기다려달라는 말과 함께 이 요구를 수용합니다. 그러는 사이 뒤르탈의 소설은 어느덧 질 드 레가 신성 모독과 그의 끔찍한 범죄 행위로 고발되어 종교 재판을 받게 되는 장면에 이릅니다.

 재판 장면은 같은 소재를 다룬 더 짧고 현대적인 소설 미셸 투르니에의 『지독한 사랑』을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독한 사랑』의 원 제목은 『질과 잔 Gilles et Jeanne』으로 역시 질 드 레의 이야기를 소재로 합니다. (질 드 레의 사망은 1440년, 위스망스의 사망은 1907년, 미셸 투르니에의 사망은 2016년으로 꽤나 간극이 있습니다.) 미셸 투르니에는 로빈슨 크루소의 패러디 소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을 쓴 작가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사실주의자를 자처하며 재현적 글쓰기로 주로 신화나 역사를 소재로 철학적 주제를 탐구했습니다. 실제로 그가 묘사하는 질 드 레의 재판 장면은 무척이나 사실적입니다. 구체적인 날짜와 인물명이 등장하고 재판의 절차나 인물들의 대화도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재판

재판은 10월 13일 목요일에 시작되어 10월 26일 수요일에 끝났다. 13일 동안 질 드 레는 세 가지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세 얼굴을 드러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한 사람 속에 다른 세 명의 영혼이 살고 있었을까?
 사람들은 먼저 거만하고 난폭하며 의젓한 대영주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밤의 공간에서 그는 동물과 아이처럼 자신을 도와주고 구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매달리는 절망에 빠진 사람으로 변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잔의 추억으로 사는 것처럼 보였다. 이윽고 그는 마음이 진정되고 얼굴이 환하게 빛나는 기독교인의 자세로 처형장에 갔다.

질의 항변

첫날부터 기소장에 나열된 49개 항의 신문에 대해 질은 성난 황소처럼 주교구 재판소의 검사 장 드 블루앵과 주교 장 드 말레스트루아를 공격했다. 말레스트루아가 질문했다.
 "이 기소에 관해서 말씀하실 것이 있습니까?"
 질이 대답했다.
 "이 기소에 관해서 할 말이 전혀 없소이다. 기소장을 읽은 사람들에 대해서 할 말이 너무 많기 때문이오.
 낭트의 주교 말레스트루아 각하. 그리고 당신 장 드 블루앵 형제, 그리고 당신 기욤 메리시 형제, 그리고 같은 횃대 위에서 불길한 새처럼 이들 고귀하신 분들 좌우에 자리를 잡으신 여러분들,
 나는 당신들만큼 기독교인이오. 그러니 나는 당신들만큼 신성한 재판을 요구할 권리가 있소. 여러분이 판사가 아니라는 점을 나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주장하는 바이오. 당신들은 하이에나 같은 사람들이오!
 소송의 원인은 나의 범죄가 아니며 나의 인격도 아니오. 그것은 나의 재산, 오직 그것 때문이오. (중략) 나는 당신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소. 나는 상소하겠소. 물러들 가시오! 여기서 나가시오!"
 권위 있는 질 드 레의 분노에 찬 공격에 재판관들은 당황하였다. 그들의 대열에 망설이는 움직임이 흘렀다. 결국 그들 중 한 사람이 일어나자 곧 나머지 사람들도 그를 따라서 일어섰다. 깜짝 놀란 그들은 민망스럽게도 줄을 지어 나갔다······.

체념

다음 재판은 그 다음다음 날인 10월 15일 토요일에 열렸다. 그날 일어났던 일은 질 드 레의 불굴의 믿음을 세심하게 소개하지 않는다면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잔 못지않게 그리고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는 하늘과 친숙하게 살았고 교회는 그의 어머니였다. 그런 이유로 그는 재판 초두부터 고함을 질렀다.
 "나는 기독교인이오. 내 말을 들으시오. 기독교인이란 말이오! 당신들처럼 나는 세례를 받았소. 따라서 원죄를 씻었고 하느님의 품으로 되돌아왔단 말이오. 그리고 덧붙여 말하자면 나는 체포되기 전날 외스타슈 블랑셰 신부에게 고해 성사를 했고 사죄를 받았소. 재판관 여러분이 보다시피 나는 갓 태어난 어린양처럼 결백하고 깨끗하오."
 하지만 상대는 그보다 교활하고 강력한 신학자들이었다. 장 드 블루앵은 그를 당혹스럽게 하는 데 적절한 한가지 교묘한 구별로 질에게 반론을 제기했다. (중략)
 "당신은 더 이상 가톨릭 신자가 아닙니다. 사실은 어제 바로 이 자리에서 재판관들은 만장일치로 당신에게 파문을 결정했습니다. 질 드 레, 당신은 파문되었고 교회 공동체에서 외부의 암흑으로 쫓겨난 것입니다."
 파문되었다고? 이 말은 청천벽력처럼 질을 소스라치게 놀라게 했다. 파문은 죽음보다 더 가혹한 것이다. 파문은 영벌의 시초이기 때문이다. 영혼은 악마의 계략을 이겨내기 위해 교회의 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질은 분노와 고뇌로 울부짖었다.
 "파문되었다고? 내가? 당신들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소! 교회는 내 어머니이오. 나는 어머니께 호소하겠소! 나는 교회의 존재, 교회의 도움, 교회의 온정을 요구할 권리가 있소. 나는 고아가 아니오. 나는 버려진 아이가 아니란 말이오. 나는 어머니의 품에서 멀리 떨어져 추위에 떨고 싶지 않소. 도와주시오! 도와주시오!"
 질은 재판관들 쪽으로 황급히 달려가 울먹이면서 말레스트루아의 품에 뛰어들었다.

중단된 재판은 그날 오후에 재개되었다. 마음이 진정되고 변한 질은 법정에 순종을 표시했다.
 "나는 장 드 말레스트루아 주교님, 주교구 재판소 검사 장 드 블루앵 그리고 그의 보좌관이자 생니콜라의 본당 신부 기욤 샤페이용을 본 소송 사건의 합법적인 재판관으로 인정합니다. 마찬가지로 르망의 주교 기욤 드 말레스트루아, 생브리외의 주교 장 프리장, 생트로의 주교 드니 로리에 그리고 낭트 지방의 종교 재판소 판사 자크드 퐁코에디를 배석 판사로 인정합니다.
 또한 무분별한 상태에서 그들에게 퍼부었던 욕설과 자존심을 상하게 한 언사에 대해 나는 겸허하게 용서를 비는 바입니다."
 차분하고 단조로운 목소리로 이루어진 이 진술이 있자 법정의 챙 없는 모자들, 뾰족하고 높은 삼각형의 주교관들, 성직자의 검은 삼각모들 그리고 반구형의 검은 모자들이 서로 머리를 숙이는 모습이 보였다. 이들은 서로 상의하고 있는 것이었다. 잠시 후 장 드 말레스트루아가 말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본 재판관들은 당신 간청하는대로 용서하는 바입니다."
 질이 알고 싶어 물었다.
 "나는 여전히 파문된 상태입니까?"
 "당신을 괴롭히고 있는 파문의 명령은 철회되었습니다. 당신은 우리의 어머니이신 교회의 품 안으로 원상 복귀되었습니다."
 이 마지막 말이 그에게 생명을 되돌려 주는 것 같았다. 질은 앞에 나란히 앉아 있는 사람들을 자신의 신장 높이로 바라보면서 일어섰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내게 제기된 잔악한 증언들이 절대적으로 사실임을 인정합니다. 정확하지 않을지라도 구두이든 서류에 의한 증언이든 모두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후로 지은 죄만큼 책임진 사람은 전혀 없습니다. 실제로 나는 둘도 없는 가장 가증스런 사람입니다. 나의 잘못은 너무도 어마어마해서 그 무엇도 능가할 수 없습니다." (중략)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당신들에게 아무런 나약함도 갖지 말고 또 지체 없이 가능한 한 가장 힘든 형벌을 내게 적용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물론 그 형벌이 아무리 가혹할지라도 나의 치욕에 비하면 지나칠 정도로 가벼울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당신들에게 나를 위해 열심히 기도해 달라고 애원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자식들 중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를 가장 사랑하듯 만일 당신들의 자비심이 불타듯 강렬하다면 나를 사랑해 주시길 간청하는 바입니다."

 

 이후 이어지는 장에서는 목격자들과 그의 공범들이 질 드 레의 범죄 행위를 증언합니다. 제일 먼저 목격자들이 사라진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음으로는 레 경의 집사인 푸아투가 증언합니다. 레 경이 자신의 성기를 꺼내는 대목에서 주교구 재판소 검사 장 드 블루앵은 푸아투의 발언을 중단 시킨 후 망토를 벗어 뒤쪽 벽의 십자가를 가리고 심문을 계속합니다. 다음으로는 앙리에의 증언을 통해 살아남은 아이들이 있는지, 죽은 아이들의 시체는 어떻게 했는지 확인합니다. 앙리에는 아이들의 시체는 주로 태워서 뿌렸지만 간혹 눈, 심장, 손과 피를 악마에게 제물로 바쳤다고 진술합니다. 또는 몇 개의 시체 머리를 잘라서 벽난로 위에 배열하고 푸아투와 앙리에를 불러 가장 아름다운 머리통을 고르게 한 뒤 레 경이 그곳에 입을 맞추곤 했다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프렐라가 증언합니다.

프렐라의 증언

(전략)
 "프랑수아 프렐라. 당신은 23년 전 이탈리아의 루카 교구에 속하는 몽트 카티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아레조 주교로부터 성직자가 되는 삭발례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시, 흙점, 수상술, 강신술 게다가 연금술까지 연구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단어에 프렐라는 인정하듯 빈정거리는 미소를 지었다.
 "2년 점쯤 몽도비 주교 관저에 살고 있었을 때 당신은 피렌체 빈민가에서 레 경의 고해 신부이며 사절로 자처하는 외스타슈 블랑셰라는 신부를 만났습니다. 그는 당신에게 상기의 레 경에 대한 구원 문제를 도와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물론 당신은 그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프렐라티가 당당하게 말했다.
 "영혼이 파멸 중인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영혼을 구하러 달려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중략)
 "그래서 당신은 악마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까?"
 "하느님과 성인들에 관한 문제라면 블랑셰 신부님이 해결했을 겁니다. 그런데 신부님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비슷한 속담이 있습니다. 즉 마부의 병에는 말의 약(극약)을! 이 경우에 약은 불을 의미합니다. 레 경의 화농성 상처를 소작하는 데 유일하게 적당한 것은 첫째로 지옥의 불입니다."
"레 경을 악마에게 넘겨주기 위한 기이한 투약이로군요!" (중략)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어린 이삭을 자신에게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까?"
 말레스트루아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노발대발하며 일어나더니 연보라색 장갑을 낀 집게손가락을 내뻗었다.
 "고약한 피렌체 놈아. 감히 성서를 모욕하다니!"
 프렐라티는 비꼬는 듯 공손하게 그를 향해 몰아섰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어린이들을 나에게 오도록 내버려 두어라.' 라고."
 말레스트루아는 마침내 고함을 치고 말았다.
 "입 닥쳐라!"
 프렐라티는 일부러 부드럽게 말을 계속했다.
 "사탄은 신의 모습입니다. 물론 전도되고 왜곡된 모습이지만 신의 모습임은 틀림없습니다. 하느님에게서 찾을 수 없는 것은 사탄에게도 없습니다. 내가 레 경을 구하는데 고려한 것은 바로 그런 심오한 유사성이었습니다." (중략)
"그건 정신 착란이야!"
 "우리는 정신 착란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레 경은 동정녀 잔의 고난을 보고 혼비백산한 것입니다."
 "지금 동정녀 잔이 이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다는 말이냐!"
 "레 경은 자신의 기사 정신을 성덕으로 빛나고 있던 잔의 수중에 맡겼습니다. 천사들이 그녀를 돌보고 있었고 성 미카엘과 성녀 카트린이 그녀에게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그녀는 결국 연전연승을 거두었습니다. 그후 악성 전위가 일어난 것입니다. 지하 독방의 어두운 밤, 소송, 유죄 판결, 속죄의 불, 속죄의 불은 또한 구원을 불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레 경 역시 이 악성전위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의 범죄는 악마를 위한 봉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후 그는 옳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옳은 길을 걷고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이제 그는 화형대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후략)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