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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연주의와 사실주의 그리고 정치적 문학: 조리스카를 위스망스의 『저 아래』와 미셸 투르니에의 『지독한 사랑』 함께 읽기

by 사등 2024. 3. 29.

위스망스의 초상, 장 루이 포랭

 

 시작하기에 앞서 고백하자면 저는 좋은 예술이 꼭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전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선 혹은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정치적 예술을 부정하거나 혐오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정치적 예술이 있다고 믿고 정치적 예술이라면 그러해야 한다는 소신 정도는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최근 국내의 문학 작품들이 단순히 정치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과도하게 부정적인 또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에 대해 다소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블로그에서 이러한 주제에 대해 다루는 두 편의 글, 「문학론, 혹은 정치적 예술의 가능성에 대하여」「정치적 예술을 향하여」를 보았습니다. 흥미를 느낀 저는 댓글을 남겼고 우리는 에밀졸라의 자연주의와 오귀스트 콩트의 실증주의, 미셸 우엘벡과 조리스카를 위스망스에 대한 짧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이 짧은 대화를 계기로 자연주의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미루었던 위스망스의 소설, 그중에서도 『저 아래』를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조금 생소할 수 있지만 위스망스는 에밀 졸라와 함께 자연주의를 이끌었던 사람 중 한 명입니다. 후에 자연주의에서 멀어지면서 카톨릭 신앙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회심 과정을 모티프로 한 개종 3부작을 집필하게 되지만요. 『저 아래』는 그가 수도원에 들어가 종교 소설가로 탈바꿈하기 직전에 쓴 마지막 작품으로 사실상 자연주의에 대한 이별 편지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아래』가 가치 있는 자연주의 텍스트인 이유는 단순히 자연주의를 부인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유심론적 자연주의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을 읽기를 강력하게 권하는) 1장에서 위스망스는 데 제르미라는 의사의 입을 빌려 자연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소설을 시작합니다.

 "내가 자연주의를 비난하는 이유는 죄수들을 태운 배에서나 쓰는 말들, 화장실이나 무료 숙박소에서나 쓰는 말들을 사용하기 때문이 아니야. 그건 부당하고도 터무니없는 일일 테니까. 우선 주제에 따라서는 그렇나 말들이 필요하기도 하고, 또 쓰레기 같은 표현들과 타르처럼 끈적끈적한 말들로도 대단히 영향력 있는 작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 말일세. 졸라의 <목로주점>이 그 점을 증명하고 있잖아. 아니야, 문제는 다른 데 있어. 내가 자연주의를 비난하는 건 두텁게 분칠해놓은 듯한 조잡한 문체 때문이 아니라 쓰레기 같은 그 사상 때문이야. 내가 욕하는 건 자연주의가 문학 속에 유물론을 구현해놓았다는 점, 예술의 민주주의를 찬양했다는 점일세! (중략) 우리 주변에서 우리를 절망케 하는 그 모든 불가사의한 것들 속에서 자네가 추구하는 자연주의는 무엇을 보았나? 아무것도 보지 못했네. 어떤 정념을 설명해야 했을 때, 상처의 깊이를 측정해야 했을 때, 심지어 가장 가벼운 정신의 상처를 씻어내야 했을 때조차 자연주의는 죄다 식욕과 본능의 탓으로 돌렸다네. 발정과 광기, 이것들이 자연주의의 유일한 체질일세. 요컨대 자연주의는 배꼽 아랫부분만을 파헤쳐왔을 뿐이고, 사타구니에 접근해서 진부한 소리만을 떠벌렸을 뿐이네. 감정이 메말라 있고, 영혼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네, 그뿐일세!
 게다가, 이보게 뒤르탈, 자연주의는 단지 서투르고 아둔할 뿐만 아니라 구역질까지 나게 하지. 이 끔찍한 현대의 삶을 극찬하고, 새로운 미국식 풍습들을 찬양하고, 야만적인 폭력을 예찬하고 금고를 신격화하는 데까지 이르렀거든. 너무나 천박하게 군중의 구역질 나는 취미를 숭배했고, 바로 그러한 사실로 인해 문체를 내버렸고, 모든 고고한 사상을, 초자연적인 것과 세상 너머를 향한 모든 비약을 팽개쳤다네. 부르주아적인 사고들을 너무나 잘 표현했던 게지. (후략)

 

 데 제르미가 말을 걸고 있는 뒤르탈은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푸른 수염이라는 이명으로 더 유명한 질 드 레에 대한 소설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질 드 레는 잔 다르크의 측근으로 싸웠던 군인으로 프랑스 원수에까지 올랐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잔 다르크가 화형을 당해 죽게 된 이후 끔찍한 성 범죄자이자 연쇄살인범이 되어 수많은 아이들, 특히 남자아이들을 납치, 고문, 강간하고 살해합니다. (동화 푸른 수염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지만 소설과는 별 연관성이 없으니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데 제르미는 자신의 친구 뒤르탈이 "간통이니 사랑이나 야망이니 하는 현대 소설의 매혹적인 주제를 모두 포기하고 질 드 레 이야기를 쓰겠다"라고 하자 위와 같이 말합니다. 그러나 아직 자연주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위스망스는 이번에는 뒤르탈의 입을 통해 자연주의를 옹호합니다.

 "나도 자네만큼이나 유물론을 싫어해. 하지만 그게 자연주의자들이 예술에 되돌려준 잊지 못할 공로들을 부정할 만한 이유는 되지 못해. 왜냐하면 결국 낭만주의가 갖고 있던 기묘한 비인간적인 것들을 우리가 피할 수 있게 해주고, 얼치기 이상주의와 독신자들이 예찬하는 쇠약한 노처녀 같은 상태에서 문학을 구출해준 건 그들이니까 말이야. 요컨대, 발자크 이후 그들은 가시적이고 손으로 만져볼 수 있을 것 같은 인물들을 창조했고, 그 존재들을 주변과 일치시켰어. 그들은 낭만주의자들에 의해 시작된 언어가 발전하는 데 도움을 주었지. 진정한 웃음을 알고 있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눈물을 흘리게 하는 재능도 갖고 있었어. 그들이라고 자네가 지금 말하고 있는 그 저급한 광신에 항상 사로잡혀 있었던 건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들은 자신들의 시대를 사랑하고 있거든. 그로써 그들을 판단할 수 있는 거야!"
 "저런! 플로베르도 공쿠르형제도 자신들의 시대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건 자네 말이 맞아. 플로베르와 공쿠르형제는 충직하고 반항적이고 고결한 예술가들이야. 그래서 나는 그들을 전혀 다른 부류로 분류하지. 쉽게 말하자면, 졸라는 위대한 풍경화가이고 비범한 군중 지도자이자 민중의 대변인이야.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는 예술 속에 실증주의가 스며듦을 격찬하는 자기 논문의 이론을 소설에서는 철저하게 추구하지 않았어. 하지만 스스의 사상에 가장 영향을 받았던 수제자, 유일하게 재능 있던 소설가 로스니에 이르러 자연주의 소설을 어떻게 되었나. 낡은 화학 용어를 사용한 세속적인 박학, 비전문가적 지식의 과시가 되었다네! 말할 필요도 없지만, 아직까지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자연주의파는 끔찍한 시대의 본능적 욕망들을 반영하고 있어. 자연주의파로 인해 우리 예술이 너무나 저속해지고 너무나 비열해졌기 대문에 나라면 자연주의를 '비굴파'라고 부르겠네. 그리고 또 뭔가? 최근에 나온 자연주의파의 책들을 다시 읽어보게, 거기서 볼 수 있는 게 뭔가? 조잡한 채색 유리잔처럼 유치한 문체로 쓰인 단순한 에피소드들, 신문에서 오려낸 잡다한 사건들, 피곤한 이야기들과 썩어빠진 스토리들뿐이라네. 그것들을 지탱해주는 삶과 영혼에 관한 사상적 지주는 없다네. 그 책들을 다 읽고 난 후, 나는 그 앞뒤가 맞지 않는 묘사들이며, 그 속에 담긴 아무 의미 없는 장광설들을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한다네. 내게 남는 바라고는 오직 한 인간이 사실상 우리에게 밝혀줄 이야기가 전혀 없는데도, 다시 말해서 할 말이 전혀 없는데도, 삼사백 페이지를 쓸 수 있었다는 데서 오는 놀라움뿐이라네."

 

 그러자 데 제르미는 "다행스럽게도" 졸라가 그의 이론을 소설 속에서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나마 영향력 있는 작품을 쓸 수 있었다고 조롱을 하며 쐐기를 박습니다. (실제로 졸라는 위스망스와 산책 중에 이 구절에 대해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고 합니다.) 언쟁에서 패배한 뒤르탈은 데 제르미가 떠난 뒤 방에 혼자 남아 다시 생각에 빠집니다. 반박은 했지만 그 역시 데 제르미의 말에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직하게 혹은 통찰력을 가지고 말한다면, 살롱과 들판의 무수히 많은 물품 목록들을 나열하면서 보잘것없는 사람들에 대한 단조로운 연구에 몰두하는 자연주의는 곧바로 가장 완전한 고갈 상태로 인도하곤 했고, 그 반대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장광설, 피곤하기 이를 데 없는 불필요한 반복으로 인도하곤 했다. 하지만 뒤르탈은 셰르뷜리에와 푀이예같은 작가들의 양털처럼 부드러운 작품들, 혹은 퇴리에와 상드 같은 작가들의 최루성 이야기들처럼, 낭만주의자들의 쓸데없이 화려한 말들로 돌아가지 않는 한, 자연주의를 벗어나서는 소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곤 했다!
 (중략)
 "자료의 진실성, 묘사의 정확성, 사실주의의 충실하고 활력에 찬 언어는 간직할 필요가 있겠지."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하지만 또한 영혼을 깊이 파고드는 사람이 될 필요가 있고, 병든 감각을 가지고 신비를 설명하려 하지 말아야 할 거야. 그럴 수 있다면 소설은, 우리의 정신과 육체처럼 결속되어 있거나 뒤섞여 있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야 할 테고, 그 둘의 상호 반응과 갈등과 일치에 관심을 두어야 할 거야. 간단히 말해 졸라가 깊이 파고들었던 큰길을 따라가야겠지. 하지만 그 길과 나란히 허공에 난 다른 길을 따라가서, 현재와 미래에 도달할 필요가 있어. 한마디로 유심론적 자연주의를 창안할 필요가 있는 거지. 그 자연주의는 훨씬 더 대담하고, 완벽하고, 설득력 있을 거야!"
 "그렇지만 요컨대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 이러한 개념에 근접한 인물로는 기껏해야 도스토옙스키를 들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이 자비로운 러시아인은 뛰어난 사실주의자라기보다는 오히려 복음주의적 사회주의자일 뿐이야! 현재 프랑스에는, 오로지 육체적인 처방으로 인해 신뢰가 무너진 가운데 두 부류의 파벌이 남아 있어. 그중 하나는 자유주의파인데, 그들은 자연주의에서 대담한 주제와 신어를 모두 제거해서 자연주의가 사교계에 접근할 수 있게끔 해주고 있지. 보다 더 맹목적인 부류가 데카당파인데, 그들은 플롯, 묘사, 인물까지 거부하면서, 영적인 대화랍시고 전보문처럼 종잡을 수 없는 말로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어. 사실, 그들은 의도적으로 당혹감을 주는 문체로 비할 데 없는 사상의 빈곤을 감추는 데 만족하고 있지." 이들 진실의 오를레앙파에 대해 생각하며, 뒤르탈은 완고하고 어린애 같은 얼치기 심리학자들을 떠올리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미지의 정신 영역을 탐사해본 적도 없었고, 어떤 정념에 대한 최소한의 통찰력도 보여주지 못했어. 그들은 푀이예의 물약 속에 스탕달의 무뚝뚝한 재치를 부어넣는 데 만족하고 있어. 그들은 소금 반 설탕 반으로 만들어진 비시 문학의 당의정들이야!"
 (중략)
 그는 데 제르미가 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래. 혼란에 휩싸인 문단에 확고한 건 아무것도 없어.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욕망을 제외하고는 말이야. 하지만 더 고상한 사상의 결핍으로 인해 그 욕망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고 도처에서 강신술과 신비술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어."

 

 여기까지 생각한 뒤르탈은 자신의 문학적 이상을 기성 작가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회화로 관심을 돌려 사색을 이어갑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