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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영원히 밝아지는 방

by 사등 2024. 2. 6.

 

<영원히 밝아지는 방>

팥칼국수

한 냄비를

끓여 오면 나오실까

 

서로 낸

손주 방에

쏟아지는 저녁해가

 

자꾸만

불인줄 알고

끄러 갔던 울 할머니

(2024.02.06)

 

소설가 피츠제럴드는 그 유명한 "위대한 개츠비"의 제목을 두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Under the Red, White and Blue", "Among the Ash-Heaps and Millionaires", "Gold-Hatted Gatsby" 등 많은 후보가 있었고 가장 마음에 들어 한 제목은 "웨스트 에그의 트리말키오"였지만 출판사의 반대로 지금의 제목이 되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The Green Light"면 어땠을까 합니다만 아무튼 이렇게 제목을 짓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제목을 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쉽고 고전적인 방법은 역시 핵심이 되는 소재나 주제 의식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설국", "마음", "무정" 같은 짧은 제목은 확실히 잘 쓰면 기억하기도 쉽고 강렬한 느낌을 줍니다. 저는 검색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런 제목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지만 최근에 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이 그런 취향을 이길 만큼 훌륭한 제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취향만 말하자면 조금 더 풀어쓴 제목을 좋아합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최고로 꼽는 것은 "영원히 계속되는 수프와 갑자기 밝아지는 방"으로 토마스 만의 "마의 산" 5장 도입부에 붙은 소제목입니다. 4장까지는 주인공 한스가 폐병으로 요양 중인 사촌의 병문안을 갔다가 사실은 본인도 폐질환이 있음을 알게 되어 입원을 하게 되는 내용이고 5장부터 본격적으로 요양원 생활을 그리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 5장의 도입부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들이 병자로서 침대에서 보내는 나날이, 그것이 아무리 '긴' 나날의 연속이라 해도 얼마나 빨리 지나가 버리는가를 독자들이 상기해 준다면 지금으로서는 충분하다. 언제나 똑같은 나날이 되풀이되기는 하지만, 늘 똑같기 때문에 '되풀이된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은 그리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단조로움이라든지, 정지하고 있는 지금이라든지, 또는 영원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당신에게 정오의 수프가, 어제 운반되었고 내일 또 운반되게 될 것과 마찬가지로 운반되어 온다.
아무튼 수프가 날라져 오는 것을 보면서 당신은 순간 현기증을 느끼게 되고, 시간의 구분이 희미해진다. 그리하여 존재의 진정한 형식으로 드러나는 것은, 당신에게 영원히 수프가 운반되는 폭도 길이도 없는 현재인 것이다.
(마의 산 中 영원히 계속되는 수프와 갑자기 밝아지는 방, 토마스 만)

 

한순간에 문병객에서 환자가 된 한스는 병상에 누워 매일 같이 먹는 수프에 현기증을 느낍니다.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에 세템브리니가 등장합니다. 한스는 그가 들어오자 갑자기 방이 밝아지는 것을 (실제로는 그가 들어오면서 전등을 켰기 때문이지만) 느낍니다. 자신을 인문주의자라고 소개한 세템브리니는 이후 한스의 정신적 스승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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