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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33

점심 산책 도서관 뒷산에는 까치도 책을 본다 푸르륵 날개깃으로 앞마구리 넘겨가며 주워다 삼킬 낟알 있을까 낙엽책을 뒤적인다 (23.12.19) 2024. 1. 16.
상사(병) 보시니 좋았을까 은둔처 레코드 숍 벗의 글 노래 삼고 나팔 빚고 북을 기워 상향등 불 앞에서도 들렸을까 상사병 (23.12.18) 고3 수험생 시절, 입시에 집중하라며 모든 전자기기를 압수했더니 창고에서 아버지가 젊을 때 듣던 CD와 카세트테이프까지 몽땅 다 꺼내 듣던 광기에 어머니마저 두 손 두 발 다 들게 했을 만큼 음악에 목말랐던 때가 있습니다. 시작은 성당에서 성서 쓰기 대회 1등 상으로 받은 512 메가바이트의 하얀색 아이리버 mp3 플레이어가 아닐까 합니다. 친구들의 것에 비해서 적게는 2배 많게는 4배나 많은 용량에 펜던트 같은 디자인, 거울 위로 초록색 글자가 떠다니는 화면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물건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외적인 요소들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재생하는 순간 세.. 2024. 1. 15.
월페이퍼 찻집에 들었다가 당신이 아쉬워요 레몬 조각 케이크는 구경만 했어요 난 봄에는 한 쌍일까요 앞못에는 너테, 외오리 (23.12.18) 너테: 물이나 눈이 얼어붙은 위에 다시 물이 흘러서 여러 겹으로 얼어붙은 얼음 연말이라고 회사에서 점심을 사줬습니다. 옆 회사는 와인을 돌렸다더라 태워줄 것도 아니면서 가까운 곳 두고 왜 먼곳이냐 고기 사줄 것도 아니면서 약오르게 왜 고깃집이냐 이런저런 불만들이 많다가도 막상 산더미같은 숙주에 고기가 덮인 모양을 보더니 테이블마다 셔터 소리 젓가락 소리가 바쁩니다. 점심은 공으로 먹었고 멀리도 나왔겠다 후식으로는 비싼 커피를 마시러 왔습니다. 10분 거리 호수가 유명한 공원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제법 아담하고 귀여운 저수지가 있는 카페였습니다. 얇게 저민 레몬을 올리고 설탕으.. 2024. 1. 14.
호연지기(湖然池已) 호수가 넓다지만 좁은 눈엔 못도 차다 한 삼 년 지난 역을 못 참고 내린 버릇 저수지 얼고 녹은 틈에 오리 하나 담아 간다 (23.12.18) 생각해 보면 지하철이란 그토록 많은 역을 지나쳐야 하는데 대부분 목적지 말고는 관심도 없어한다는 게 참 재미있습니다. 저도 기숙사에 살았던 1학년 때를 제외하면 항상 지하철로 통학을 했습니다만, 항상 종점까지는 잠을 자느라 중간에는 무슨 역이 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데 종점에서 내려 지상철을 타고 다시 두 정거장을 더 갈 때는 조금 기분이 달랐습니다. 매일 지나는 그 역은 연못인지 호수인지 모를 물가에 논 같은 것도 조금 보이는 풍경이어서 아침에는 수업이 바빠, 오후에는 집에 가기 바빠 차마 내리지는 못했지만 항상 어떤 곳일까 궁금했습니다. 그러다 통학을 같.. 2024. 1. 13.
편지를 보내요 문 앞에 두었어요 다 자란 마음 몇 줄 한 다발 자랐지만 몇 줄기만 보냈어요 다듬기 곤란할까 벌레라도 들까하여 (23.12.14) 2024. 1. 12.
서른의 재산 신고 여남은 지인들과 아홉 벌 옷가지와 여섯 권 빌린 책과 석자의 이름이면 서른은 더 살듯하다 그뿐이면 족하다 (23.12.14) 남들은 아쉽다는 이십대지만 솔직히 마지막에 가서는 조금 거추장스러웠습니다. 두 시간 선불로 내고 들어간 노래방의 첫 삼십 분은 무척 즐겁지만 점점 부를 노래는 떨어지고 목도 아파오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낮아진 텐션으로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보면 눈 깜짝할 새 끝날 시간이 다가오고 그제야 뭔가 불러야 할 것 같은 불안감에 노래책을 뒤적입니다. 남은 시간 1분. 이젠 정말 끝이구나 싶어 허겁지겁 " Never Ending Story"나 "Better Than Yesterday"를 고릅니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화면 구석에 메시지가 나타납니다. "30분 추가" ...과거에는 외적인 .. 2024. 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