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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by 사등 2024. 1. 8.

 

<별>

 

밤 하늘, 세상 가장 아름다운 쓰레기장
저마다 여기저기 두고 온 사금파리
이토록 눈이 시리게 널브러져 있구나

(2019.7.7)

 

제가 시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조금 엉뚱합니다. 졸업을 유예하고 백수 시절 어디라도 좋으니 밖에 좀 나가라는 소리에 도서관에 자주 갔는데, 그때 가장 즐겨 읽었던 책이 소세키의 소설들이었습니다. 고등교육은 받았으나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인물들이 잔뜩 나와서 위로가 되었을까요. 아무튼 그렇게 소세키를 좋아하게 되어 소설 외에도 강연록이나 회고록, 서한집까지 찾아보게 되었는데요. 특히 요절한 하이쿠 시인 마사오카 시키와 나눈 우정이 가슴을 울렸습니다. 그렇게 또 하이쿠에 대해 알아봤더니 시조와 비교를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웃한 두 나라의 고유 정형시라는 점은 같지만 한쪽은 자국민들도 잊어가는데, 한쪽은 외국인들까지 즐기는 문화가 되었다는 게 좀 안타까웠습니다. 보통이면 좀 안타깝고 끝날 일인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물론 여기까지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저는 시조를 한 번 살려보겠다며 친구 한 명과 시조를 쉽게 쓰고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 제작에 착수하게 됩니다. 졸업 작품이었던 이 프로젝트는 점점 쪼그라들어 기계 학습을 통해 창작 시조의 정격을 판별해 주는 프로그램 정도가 되었고, 그 마저도 결국 날림이었지만, 어쨌든 덕분에 전 졸업을 했습니다. 그때 테스트 케이스로 썼던 시조가 바로 이 시조입니다. 부서져 사금파리가 된 꿈이면 또 어떻습니까? 꼴사납지만 안주로는 그만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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